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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사찰 김천 직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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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오주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9,146회 작성일 09-09-0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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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사적기 자료는 여러 종류가 전한다. 이들 자료는 대부분 1980년에 영인된 직지사지에 종합적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1681년 조종저(趙宗著)가 지은 「금산황악산직지사사적비명(金山黃岳山直指寺事蹟碑銘)」과 1776년 급고자(汲古子) 스님이 지은 「경상도금산군황악산직지사고선종대가람사적(慶尙道金山郡黃岳山直指寺古禪宗大伽藍事蹟)」이 대표적 자료라고 하겠다. 물론 이전에도 학조대사(學祖大師)가 편찬한 사적기와 율곡 이이(李珥)가 1577년에 편찬한 사적기가 있었으며, 편찬 연대를 알 수 없는 사적비도 세워져 있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이 소략하거나 전해지지 않고 있는 자료도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따라서 직지사의 역사는 대부분 위의 두 자료에 의존하여 설명되고 있는 상태이다.

이들 사적기 자료에는 직지사가 418년 아도화상(阿道和尙)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아도화상이 구미의 도리사(桃李寺)를 창건할 때 이곳 직지사도 함께 창건하였다는 설인데, 직지사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각종 사적기에서는 예외 없이 이 설을 밝히고 있다.

직지사의 창건과 관계된 내용 가운데 주목되는 또 하나의 사항은 ‘직지(直指)’라고 하는 절 이름의 유래다. 직지는 보통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선가의 용어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직지사의 사찰명은 이러한 선종의 가르침을 표방하고자 하는 의도 속에서 지어졌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사적기 자료에는 사찰 이름과 관련한 또 다른 두 가지의 설이 소개되어 있다.

그 첫 번째는 창건주 아도화상이 도리사를 창건한 이후 멀리 김천의 황악산을 가리키면서 저 산 아래도 절을 지을만한 길상지지(吉祥之地)가 있다고 한 데서 절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하는 설이다. 다음 두 번째는 고려 초 능여(能如) 스님이 사찰을 중창할 때 자(尺)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자기의 손으로 땅을 재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찰명이 지어졌다는 설이다. 이들 설은 모두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겠지만, 역시 직지사의 중심 사격(寺格)을 감안한다면 선종과의 연관성 속에서 사찰명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선종이 본격적으로 유행하는 시기는 9세기 이후라고 보아야 하므로, 직지사라는 사찰 이름이 정착된 시기와 그 배경에 대해서는 앞으로 보다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야할 것이다.

직시사의 역사는 곧 한국불교 전 기간에 해당하는 오랜 역사를 지닌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연혁은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창건 이후 고려시대까지의 역사는 거의 알려진 내용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여러 종류의 사적기에 의해 17세기 이후의 역사는 비교적 많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고려시대 이전까지의 직지사 역사로는 자장 율사(645년), 천묵 화상(930년)의 중창 기록만 전하고 있을 뿐인데, 이들 기록 역시 조선시대 사적기에만 실려 있어 역사적 사실 여부를 단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현재 직지사 경내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석조물들이 여럿 남아있으므로, 직지사는 고려시대 이전까지 꾸준하게 사세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직지사는 고려가 건국되면서 제2의 중흥기를 맞이했던 것으로 보인다. 태조 왕건과 능여(能如) 대사와의 깊은 관계 때문인데, 사적기에 의하면 태조의 지원에 의한 대규모의 직지사 중창이 936년에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태조와 능여 스님의 관계는 일반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능여 스님은 역사상 실존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능여암이라는 산내 암자가 오랫동안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능여 스님이 직지사 중창주로서의 위상을 확고하게 지니고 있었다는 사례로 보아야할 것이다.

고려시대의 직지사 역사에서 주목되는 또 하나의 사항은 1185년 임민비(林民庇, ?∼1193)가 「대장당비(大藏堂碑)」를 찬술하고 그 비를 건립하였다는 내용이다. 이 비는 현재 남아있지 않지만 일부 비편의 탁본 내용이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에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 「직지사」조의, ‘고려 임민비가 지은 대장당기문이 있다.’는 내용으로 보아 적어도 16세기 전반까지 이 비가 실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930년 직지사를 중창하였던 천묵 조사가 금자대장경(金字大藏經)을 서사(書寫)하여 신라 조정에 헌상하였다는 사적기 내용이 있어 눈길을 끈다.

학계 일부에서 1185년 대장당비를 세울 당시, 대장당 안에 이 금자대장경이 봉안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는 상태지만, 앞으로 더 연구해 보아야할 과제로 생각된다. 직지사는 오랫동안 선종 사찰로서의 사격을 유지해오고 있다. 이러한 직지사에 대장경을 봉안하기 위한 별도 전각이 세워져 있었다는 사실은 직지사가 지니고 있는 또 다른 특성이라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 직지사 역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전 기간 동안 꾸준하게 사세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조선시대의 암울했던 불교 상황을 고려해볼 때, 한 차례의 끊어짐 없이 사세를 유지하였다는 점은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의의를 지닌다.

물론 직지사는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사찰 대부분이 소실되는 시련기를 보내게 되지만, 이후 적극인 중창 불사를 통해 상당부분을 복구해 내는 저력을 보였다.

조선 초기의 사세를 유지해 가는 데는 1399년 정종의 어태(御胎)를 직지사 북봉에 안치하는 일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고승 학조(學祖) 대사가 이 곳에 주석하며 중창불사를 이룩함으로써 사세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1596년 왜적의 방화로 사찰 대부분이 소실된 것은 직지사 역사에서 가장 시련을 겪었던 시기로 보인다. 하지만 직지사 대중들은 1602년부터 중창 불사를 시작하여 이후 60여 년 간 사찰의 면모를 회복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여 나갔으며, 1662년 마침내 중창불사를 회향하게 되었다. 이 때의 중창 불사에는 사명 대사의 음덕이 크게 작용하였다.

직지사는 사명 대사의 출가 사찰이었고 스님이 입적하자 1610년 스님의 유골을 이곳에 모셔와 부도를 봉안하였다. 당시 조정에서는 국난극복에 큰 공적을 남긴 서산·사명 대사와 관계된 사찰에 적지 않은 지원을 하고 있었는데, 직지사 역시 이때 조정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8세기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직지사 역사는 사찰을 유지 발전시켜나가기 위한 대중들의 노력이 지속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사찰 사적을 편찬하기 위한 노력들이 있었다. 근대기의 직지사는 선종수사찰(禪宗首寺刹)로서의 위상을 다져나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시기로 평가된다. 이 때의 고승으로 추담 관징, 제산 정원, 퇴운 원일 등을 들 수 있는데, 이 분들에 대해서는 아래의 주요인물 편에서 설명하겠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다소 침체된 모습을 보이던 직지사는 1958년 녹원(綠園) 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이후 옛 사격을 되살리기 위한 대대적 중창불사를 진행하면서 다시 활기를 띠었다. 직지사 중창불사는 현대 한국불교에서 기념비적 평가를 받을 만큼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40여 년 간에 걸친 중창 불사를 회향한 직지사는 이제 미래 한국불교의 중심도량으로 거듭나기 위한 내실을 다져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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